뉴질랜드 워홀
~네 번째 이야기 : 기스본(Gisborne) 달라샵 일자리~
기스본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뉴질랜드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3개월입니다. 어학연수도 3개월이고요.
저는 기스본에 있는 한인 달라샵에서 3개월간 일했습니다.
오클랜드에서도 일자리를 알아봤었는데, 한인 잡은 법정 시급보다 낮았습니다. 하지만 여기 사장님께서는 뉴질랜드 최저시급을 챙겨 주셨어요!
여기서 3개월 일해서 뉴질랜드 달러로 약 9,000달러를 벌었죠.
크리스마스 시즌이기도 해서 바쁜 것도 한몫 단단히 했습니다.
그때는 뉴질랜드 환율이 800원대 후반이었는데, 지금은 700원대네요...;;;;
제가 뉴질랜드 오려고 모아놓았던 1000만원은 비행기 값과 3개월 어학연수 신청으로 400만원을 쓴 상태였습니다.
홈스테이를 6주 동안 했었는데 한 주당 $220이었습니다.
너무 비싸서 플랫을 구해서 나왔는데 그게 한주당 $140이었습니다.
약 13주 동안 오클랜드에 머무르면서 숙박비로만 200만원을 쓴 셈이죠...
거기에 홈스테이에 점심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식비도 만만치 않았고, 시내까지 나가기 위한 버스비도 학생 할인을 받았지만, 없는 형편에 빠듯했습니다.
그러던 중 달러샵에서 일을 하게 되어서 돈도 모으고, 먹고 싶은 걸 장 볼순 있는 수준으로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돈으로 2달 동안 각각 한 달씩 남섬, 북섬을 여행하고, 남은 돈으로 호주로 건너갈 수 있는 경비를 마련할 수 있었죠.
달러샵은 우리나라 다이소 같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다이소가 물건을 천 원, 이천 원으로 파는 것처럼, 달려샵도 1달러, 2달러로 팔아서 달러샵이라고 해요.
뉴질랜드의 대형마트에서 식품을 구매하는 물가는 우리나라보다 더 쌉니다.
외식비가 비싸서 그렇지 집에서 해서 먹는다면 문제가 될 건 없어요.
하지만 공산품은 한국보다 비쌉니다.
그래서 기스본에 처음으로 달러샵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많이 와서 쇼핑을 했죠.
저의 영어의 시작은 어학연수로 인해서도 아니고,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였습니다.
현지인과 부딪히며 일하니까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워낙 다양한 종류의 것을 팔고, 매장도 넓다 보니까 사람들이 뭐는 어딨냐?라고 물어보는데 처음에는 솔직히 말해서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 거예요.
나름 뉴질랜드에서 3개월 동안 어학연수도 했으니 어느 정도 자신감은 있었는데... 막상 현지인을 상대로 일을 하려고 하니까 언어의 벽이 느껴졌습니다.
약간 사투리식으로 말하는 것도 있었지만, 정말 문제는 귀가 안 들린다는 것이었죠.
단어도 굉장히 생소한 것들이 많았고, 스펠링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 스펠링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습니다.
2주 넘게 바보같이 손짓 발짓해가면서 일하면서 바보 취급도 많이 당했어요.
그렇게 계속 부딪히니 어느 순간부터는 영어가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모르는 것을 찾으면 나중에는 없다거나, 다 팔렸다거나 했죠. 모른다고 하면 그 바보 취급하는 눈동자와 얼굴이 너무 싫었거든요.
일하는 입장에서 그러면 안되지만,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걸 찾아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여기 있지 않냐고, 이거라고 가르쳐주면, 아 그렇구나~하고 배워가며 일했어요.
훔치는 사람이 많아서 신경이 곤두서기도 하고, 위험한 얘들 때문에 위협도 받았지만 달러샵에서의 일은 즐거웠습니다.
한국에서 사무직만 하다가 하루 종일 서있으려니까 2주 동안 계속 다리가 붓고, 힘들었는데 그것도 어느 순간 그것도 익숙해지더라고요.
크리스마스이브 때는 고개도 안 들고 계산기 앞에서 계산만 했습니다. 매니저님이 가격 불러주면 옆에서 계산해서 돈 받아 거슬러 주는 거만 하루 종일 했을 정도로 사람이 몰려왔고, 그 날 저녁에 마감하고 가게를 보니 매대에 상품이 반이상이 팔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과 비매너로 돈을 던지는 사람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을 상대할 수 있었습니다.
인종차별을 당하다 보니 나중에는 저 또한 그런 사람을 인종차별까지 하고 있는 사태까지 이르렀죠.
가끔가다 한 번씩 큰 덩치로 죽일 듯이 노려보는 사람과 마주치면, 심장은 쿵하지만 포커페이스는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깡다구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일자리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일을 많이 할 수 있어 더 많은 돈을 세이브할 수 있었던 것도 컸죠.
뉴질랜드 워홀 중 처음이자 마지막 일자리였지만, 정말 만족했던 잡이었던 거 같아요!
앞으로 쓸 호주 워킹홀리데이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일자리 이야기가 있어요.
호주와 비교하자면 뉴질랜드에서가 정말 천국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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